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풍족하고 넉넉한 명절이다. 그러나 올 추석은 예년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대형마트, 전통시장 할 것 없이 매년 이맘때가 되면 명절 대목을 맞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너나없이 분주할 텐데 영 썰렁하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추석을 코앞에 남겨놓고 사상 초유의 강풍을 동반한 13호 태풍 ‘링링’이 남부지방을 덮치면서 흉년에 쐐기를 박은 모양새다. 강풍을 동반한 링링은 가뜩이나 넉넉지도 않은 이번 추석의 안식과 위로를 비웃 듯 불과 몇시간 사이에 깊은 상처로 훑었다. 가히 자연은 겁낼 만했다.
올해는 농촌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이 흉년이다. 농촌의 흉년이 비나 태풍 등 기후에 따른 자연재해 때문이라면, 한국 경제의 침체는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에 설상가상 미·중 간 무역 분쟁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세계경제뿐만 아니라 한반도 경제 역시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실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와 근로자, 기업가 등 경제 주체세력들로 인해 발생한 인재까지 덩달아 흔들리며 우리 경제는 회복세를 타지 못한 채 예상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
학자금 대출에 기대어 대학을 간신히 졸업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취직할 곳이 없어 매년 상당수가 캥거루족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공시생, 실업자군 등으로 전락하고 있다. 소수의 신입사원 모집에 구직자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들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구직자가 입사를 희망하는 대기업의 오너나 전문 경영인들은 설문조사에서 늘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기보다는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이 벌어놓은 돈을 뜯어 쓰는 데만 익숙한 이 땅의 비정상적인 정치인들이 이들을 존경받기 어려운 부류로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실업을 구제하고 경제성장을 주도해야 할 경제인들이 비난 받는 풍토가 됐으니 기업인들의 의욕이 생길리 만무하다. 만족할 만한 경제성적표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근로자들은 노동생산성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데도 임금인상에 대한 투쟁강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기존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나눠 근로자층을 새로 넓히기보다는 내 몫 키우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이다.
정치인들은 당선 전에는 너나없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선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 몰라’ 외면하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물림하고 있다. 그들은 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돌리고 어쭙잖은 자존심을 건 정치투쟁에만 골몰한다. 마치 자기들은 무슨 일을 하든 지지하는 국민이 따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태풍 피해와 흉년, 불황을 걱정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립서비스를 하면서도 내심으론 서로가 서로를 두들겨 잡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이러고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지 않고 호전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사기를 북돋워 주진 못할망정 국민화합까지 해쳐서야 되겠는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커지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본능적으로 움츠려 든다. 몸을 사리는 것이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단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사회가 불안하게 돌아가면 돈을 안 쓴다. 저축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는 곧 필자의 경험에서 나온 삶의 지혜다.
기업은 전망이 불투명하면 금리가 떨어져도 좀처럼 투자하지 않는다. 무리하게 사업을 벌여 위험에 처하 느니 안전한 길을 택한다. 이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경기 악순환의 고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결국 우리 경제를 살리려면 불안감과 불확실성부터 없애야 한다는 결론이다.
현재 서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뛰는 농수산물, 생필품 가격상승에 놀라면서 가슴 졸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정당하게 번 돈이라고 하더라도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의 입장도 한번쯤 헤아려 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며칠 남지 않은 우리의 고유한 명절 추석, 비록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기침체와 맞물려 국내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넉넉한 고향 인심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