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8 (화)

  • 구름많음동두천 16.2℃
  • 맑음강릉 19.6℃
  • 구름많음서울 16.8℃
  • 구름조금대전 17.8℃
  • 구름많음대구 18.4℃
  • 구름많음울산 19.0℃
  • 구름조금광주 18.6℃
  • 구름많음부산 19.5℃
  • 구름조금고창 19.8℃
  • 구름많음제주 20.6℃
  • 맑음강화 18.2℃
  • 구름많음보은 17.3℃
  • 구름조금금산 17.9℃
  • 구름많음강진군 19.9℃
  • 구름많음경주시 19.6℃
  • 구름많음거제 20.1℃
기상청 제공

동아시아탐방

기나긴 악연 한일관계 역사

 

지난 7월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국가로 지정으로 시작해 한일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보단 갈등과 부정적인 관계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한일관계의 역사를 기조로 제작하는 미디어에는 주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위주로 만들고 있지만 한일관계의 역사는 그보다 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시작은 그래도 우호적
한일관계의 시작은 대략 3세기부터 시작되며 벼농사 문화를 전수해주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벼농사 문화 전수와 함께 기록적 문헌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으나 교역 또한 활발히 이뤄졌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 중 백제는 일본(당시 왜라 불리며 이 둘의 정확한 교류시기는 불명이다.)에게 불교와 한자등 선진문화와 기술을 전수하고 백제는 신라와의 전쟁당시 일본에게 군사인력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7세기 초중반 까진 한일관계는 나름 우호적인 측에 속했었다. 최근 일본의 가타카나 문자가 신라에서 전수되었다는 가설이 있으나 이에 대한 진실을 뒷받침할 근거자료가 부족해 이 가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 없다.

 

개입과 침략의 기억
7세기 전까진 이처럼 한일관계는 기술을 전수하고 문화를 교류하는 비교적 우호적 관계에 있었다면 7세기 전후부턴 본격적으로 기나긴 악연의 시작점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반일감정은 일제강점기부터 극대화 되어왔지만 그 시작점에 해당되는 건 아마 7세기부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유추해보게 된다. 실제로 신라가 이뤄낸 백제 멸망은 7세기 중후반에 이뤄졌고 이 시기에 백제의 멸망과 함께 백제의 백성들은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8세기부터 신라와 왜의 관계는 백제멸망의 거슬리기에 견제해야할 대상이 아닌 대립이란 구도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즉, 이 이후부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의 기나긴 악연의 길이다. 삼국시대이후 고려, 조선 그리고 현대까지 오게 되면 우호적인 문물 교류 보단 일본과의 대립과 전쟁에 관련된 역사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잊어선 안 될 일본의 침략역사로는 조선시대의 임진왜란과 조선말기 부터 대한제국 시절의 일제강점기를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시기를 기조로 하는 미디어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이 발생한 전후 시기를 소재 및 그 시기와 관계된 배경으로 삼는 미디어작품으로 대표적으로 꼽는 것은 칼의 노래 임진왜란의 주역인 이순신의 생애를 다룬 서적으로 영웅으로서의 이순신만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이순신도 표현해냈다. 영상으로 넘어가면 2005년 국내에 상영된 영화 천군과 명량(2014), 불굴의 이순신, 임진왜란 1592 등이 있다. 영화 천군은 남북 군인이 1572년의 조선에 도착해 이순신을 무관으로서 훈련시키며 그의 숨겨진 영웅적인 자질을 키워내며 이후, 이순신과 함께 여진족과 맞서는가 그것이 아니면 본래 있어야 할 현대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갈등과 함께 지금으로선 분단된 남북 군인들이 한명의 인물과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요소가 담겨있다. 당시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으나 지금 보면 사람들의 가슴속에 잠든 무언가를 자극하기엔 좋은 영화라 평하고 있다.


천군이후 조선시대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2014) 역시 역사적인 전쟁 명량 해전을 영상화 한 것으로 모두가 불가능할거라 생각했던 그 상황 속에서 이순신 장군의 역량 및 명량 해전의 과정과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이끌어낸 승리를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의 시기를 모티브로 만든 미디어 작품
일제강점기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만하고 잊어선 안 될 악몽과도 같은 시기다.
이 시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과 조선왕조의 끝, 강제노역, 그리고 위안부.... 셀 수 없을 정도로 얽힌 악연의 정점을 찍은 이 시기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인권도 존중조차 없이 소모품으로서 이용되었고 지금도 강제노역건과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모티브로 삼는 작품들의 대다수는 위와 같이 독립투사들과 강제노역, 위안부,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들이 실제로 겪은 일 또는 기록을 기조로 만들어지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왕족 덕혜옹주의 이야기 또한 다양한 매체로 다뤄지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2019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3.1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며 일제의 압박과 탄압 속에서 독립을 위해 활동한 사람들의 행동과 그들의 희생 위에 지금이 있다는 걸 다시금 생각해야만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기조로 하는 미디어 작품들을 몇 가지 꼽자면, 가장 최근에 상영된 봉오동전투(2019), 항거:유관순이야기(2019), 군함도(2017), 덕혜옹주(2016), 동주(2015), 귀향(2015)을 꼽을 수 있다.

 

 

과거가 있고 이를 알고 있기에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모르거나 알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 이에겐 발전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권리조차 없다.

 

현재 한일관계에 대한 반응을 살피면 대부분은 부정적 반응과 함께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조차 없는 일본에 대한 비난마저 일고 있다. 이는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점에도 비롯된다.

 

과거 삼국시대 무렵의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침략과 강제적인 지배란 시대를 거치면서 그 관계는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것이었다. 이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이에 대한 도화선일 뿐. 앞으로의 관계의 변화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그 뿌리마저 깊은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주택용 전기 소비자의 사용 변화 실증한다
수요관리, 소비자 선택권 확대 등의 목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에서 주택용 전기요금의 하나로 시행중인 계시별 요금제 시행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실증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산업통상자원부(성윤모 장관)와 한국전력공사(김종갑 사장)는 주택용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를 전기소비자에 적용하는 실증사업을 서울 등 7개 지역, 2,048가구를 대상으로 9월 23일부터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스마트 계량기가 보급된 서울, 경기, 인천, 대전, 충남, 광주, 경북 아파트단지 중 한전에 참여를 신청한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계시별 요금제는 계절별(하계·동계·춘추계), 시간대별(경부하·중간부하·최대부하 시간대)로 구분하여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으로 현재 한전은 산업용, 일반용 고압 소비자에게 계시별 요금제 적용중이나 주택용 전기요금에는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실증사업을 통해 계시별 요금제 적용시 주택용 소비자의 시간대별 전기사용 변화를 살펴보고, 특히, 소비자 그룹 특성별(예: 소득, 가구원수, 사용가전기기 등)로 전기사용 패턴 및 변화를 추가적으로 분석해서 계시별 요금제에 대한 소비자의 수용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실증대상 가구는 스마트폰 애플

중국 대련한국청소년 오케스트라음악회 개최,새로운 대한민국 향후 100년을 그리자
중국 대련한국청소년 오케스트라 음악회 개최,새로운 대한민국 향후 100년을 그리자 이종걸 국회의원이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의 특별위원장을 맡아 1일(화)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국 대련한국청소년 오케스트라 축하연주회'에 참석해 "세계각지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지켜오고 계신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만드셨고 미래를 만들고 계십니다“라고 대회사에서 밝혔다. 국회의장 문희상의장은 ”한중교류에 큰역할을 담당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한인 청소년 오케스트이며 740만 해외동포의 힘을 한데 모아 영광의 100년 역사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제14회 세계한인의 날'을 축하하고 3·1 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공연을 위해 방한한 '대련한국청소년 오케스트라'는 2008년 창단 이후 수많은 정기연주회를 통해 한-중 교류에 큰 역할을 해왔다. 연주회에는 이종걸·김한정·서영교·정진석 의원, 박원우 2019세계한인회장대회 공동의장 및 중국한국인총연합회장, 강인희 2019세계한인회장대회 공동의장 및 러시아·CIS한인총연합회장 등이 참석했다. 중국 대련한국청소년 서경렬 오케스트라


기나긴 악연 한일관계 역사
지난 7월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국가로 지정으로 시작해 한일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보단 갈등과 부정적인 관계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한일관계의 역사를 기조로 제작하는 미디어에는 주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위주로 만들고 있지만 한일관계의 역사는 그보다 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시작은 그래도 우호적 한일관계의 시작은 대략 3세기부터 시작되며 벼농사 문화를 전수해주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벼농사 문화 전수와 함께 기록적 문헌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으나 교역 또한 활발히 이뤄졌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 중 백제는 일본(당시 왜라 불리며 이 둘의 정확한 교류시기는 불명이다.)에게 불교와 한자등 선진문화와 기술을 전수하고 백제는 신라와의 전쟁당시 일본에게 군사인력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7세기 초중반 까진 한일관계는 나름 우호적인 측에 속했었다. 최근 일본의 가타카나 문자가 신라에서 전수되었다는 가설이 있으나 이에 대한 진실을 뒷받침할 근거자료가 부족해 이 가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 없다. 개입과 침략의 기억 7세기 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