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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엔오피니언

[칼럼] 진보논객 진중권의 양심

 

개인이나 집단, 누구에게나 환상은 있다. 다만 그 환상은 잠깐의 황홀감, 고상함과 함께 가끔깊은 심연마저 산산히 조각낸다. 긴 시간에 만들어 진 환상이 일초도 안되는 목격과 잠깐의 결정에 흩어지는 셈이다. 책도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다 가도 다른 생각이 끼면 그 환상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 우리에게 소설과 영화로 익숙한 ‘위대한 개츠비’를 쓴 F.스콧 피츠제럴드의 삶과 책도 그렇다. 그는 평생 아내와 싸움을 하고 지냈고 누구에게도 속 깊은 얘기를 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연대의 절친 어니스트 헤밍웨이 만큼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늘어놨는데 심지어 자신의 은밀한 성생활 같은 얘기들도 털어 놓았다. 그 중에 자신의 크기에 다른 여자와의 관계가 어려울 것이라는 고민도 있었다. 이 같은 얘기를 들은 헤밍웨이는 당장 스콧을 화장실로 데려가 검증을 하고 ‘정상’이라는 시원한 대답을 줬다.

 

스콧의 아내가 오히려 정상이 아닐 것이라는 헤밍웨이의 말에 스콧은 환상은 늘 깨지게 마련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소설이나 영화속의 화려하고 세련된 미국문화를 동경했던 사람이면 결코 알아봐야 좋을 리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다. 헤밍웨이는 알려진 대로 남성 심벌의 턱수염으로 채워진 욕망만큼 낚시나 사냥으로의 관심으로 남성에 관한한 모두를 소유한 전형적인 미국 작가다. 그리고 그의 책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편력 이외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연애와 결혼의 흔적을 스콧과 발견해 여러 책들을 발간하기도 했다. 종군기자 출신인 그답게 사랑과 전쟁이나 혹은 지어낼 수도 없고, 지어내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들도 포함해서다. 이런 작가들에게 환상은 또 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음담패설을 몰래 던지는 제임스 조이스와 따듯한 인간관계를 통해 가족을 그렸던 것과 다르게 가족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던 톨스토이가 그렇다.


한 가지 이 모두의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분모는 작가들이 그린 시대부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예술가들에게는 별 이유 없이 ‘관대’라는 변명거리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지명도 만큼 독자들은 분개하고 있는지 모른다. 스콧이 쓴 ‘위대한 개츠비’가 그렇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안에서 주인공들은 온갖 사치와 향락이 난무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투영된 다양한 인물 군상으로 나타난다. 독특하게도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부르주아다. 그러나 위대하다는 개츠비는 좀 다르다. 보이는 모습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어도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오직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끓임없이 노력한다. 스콧은 말한다. “미국인이라면 지느러미를 가지고 태어나야 하며 그 지느러미는 돈 이다” 지금 우리가 한 사람의 금수저를 물고 흙수저를 얘기하는 앞뒤 없음의 뒤범벅 스토리로 괴로워 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소설로 보여준 셈이다.

진보학자 층에서 나름 진정성 있는 말로 유시민 입 보다는 그래도 공감 받는 진중권 교수가 최근의 어지러운 상황에 얼마 전 언급을 분명히 했다. “기회 평등? 과정 공정?… 아니잖아요” “기회가 평등합니까? 안 하잖아요. 과정이 공정했습니까? 아니잖아요. 결과가 정의롭다고 할 수 있나요? 이게 뭐냐라는 거죠.” 그는 명칭 좋을 정의당에 오랜 당원이었고 최근 정의당이 조 장관 임명에 찬성한 것에 반발해 탈당계를 냈다가 철회했다는 애매한 소식마저 들려 이런 넋두리 비슷한 말들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있다. 그가 개츠비의 환경까지는 아니지만 부르조아속의 소위 강남진보를 자처한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조 장관과 사회학연구소까지 만든 가까운 사이여서만 아니다. 다만 평등치 못한 기회와 공정하지 못한 과정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짚어가면서 차라리 이 판에 침묵하고 상황을 관전하던 중도층에게 제대로 된 한 표를 던져주었다고 나는 여기고 있다.

진 교수의 말처럼 그를 포함해 지금 극진보나 극보수가 아닌 중도층의 국민들은 거의 패닉상태다. 그의 말을 빌려 “신뢰했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고 존경했던 분들을 존경할 수 없게 됐다”며 “의지했던 정당도(각 개인이 다르지만) 믿을 수가 없어지니까 사실은 윤리적으로 완전히 패닉 상태”라는 말이 가까워지면서다. 여러 입들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답을 구하고 있다. 정당이 실종된 광장정치에, 모인 패거리 명수만을 세는 기성정치에 날고 기는 논객마저 가세하며 휘발유를 붓고 있다.그것은 개츠비 같은 환상속 무리 안에서 순수함을 다시 찾아야 하는 절박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끌던 시대는 지난 것 같고 젊은 세대에게 물려줘야 된다. 진보가 거의 기득권이 돼버렸다는 느낌이 들어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 그는 말미에 이런 말도 놓치지 않았다. “황우석 사태도 아니고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 가지고 지금 미쳐버린 게 아닌가...”. 진중권,참 멋진 진보논객이다.





기나긴 악연 한일관계 역사
지난 7월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국가로 지정으로 시작해 한일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보단 갈등과 부정적인 관계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한일관계의 역사를 기조로 제작하는 미디어에는 주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위주로 만들고 있지만 한일관계의 역사는 그보다 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시작은 그래도 우호적 한일관계의 시작은 대략 3세기부터 시작되며 벼농사 문화를 전수해주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벼농사 문화 전수와 함께 기록적 문헌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으나 교역 또한 활발히 이뤄졌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 중 백제는 일본(당시 왜라 불리며 이 둘의 정확한 교류시기는 불명이다.)에게 불교와 한자등 선진문화와 기술을 전수하고 백제는 신라와의 전쟁당시 일본에게 군사인력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7세기 초중반 까진 한일관계는 나름 우호적인 측에 속했었다. 최근 일본의 가타카나 문자가 신라에서 전수되었다는 가설이 있으나 이에 대한 진실을 뒷받침할 근거자료가 부족해 이 가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 없다. 개입과 침략의 기억 7세기 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