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팀 7人, ‘2021 대한민국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 도전과제 B(과학원리 분야)’에서 대상 수상

아홉 쌍의 눈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일곱 쌍은 유난히 맑고 빛이 났다. 바로 ‘2021 대한민국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C.I.S(Chemistry Is Special) 팀원들의 눈이었다. 남은 두 쌍은 그들을 지도했던 김은경 교사와 허영선 교장의 눈이었다. 

저 눈동자들엔 무엇이 담겨 있는 걸까. 질문을 한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도 보이는 듯하다. 그 눈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긴장되는 건 도리어 이쪽이었다. 괜스레 목기침을 뱉은 뒤 허영선 교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 교장과 눈길이 마주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허 교장은 미인이었다. 그러나 하늘하늘 갈대 같은 가녀린 미인이 아닌, 기품과 여장부의 기백이 함께 어우러져 발산되는 그런 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허 교장은 학생들 칭찬에만큼은 팔불출이었다. 본인에 대한 질문에도 아이들이 참 착하다는 둥, 요즘 이런 제자들이 어딨느냐는 둥 추임새처럼 그런 말이 줄곧 따라붙었다.


 

▲ 영천여고 C.I.S팀과 (왼쪽부터)김은경 교사와 허영선 교장
▲ 영천여고 C.I.S팀과 (왼쪽부터)김은경 교사와 허영선 교장

부임 1년도 안 됐지만 학교는 한창 변혁 중

허 교장은 부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학생들이 ‘2021 대한민국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경사를 맞이하게 됐다. 

“영천시는 농촌과 시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돼요. 시라고 하기엔 소도시이고, 시골이라고 하기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죠.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참 똑똑하면서도 순수해요. 이번에 수상하는데 제가 한 일이라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것밖에 없어요. 전부 우리 C.I.S팀과 김은경 선생님이 잘해 준 덕분이죠.”

허 교장은 겸손히 대답했지만 발자취를 되짚어보니 누구보다 학교에 애정을 갖고 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교육계에 33년간 몸담고 있던 허 교장은 전문직인 장학사로 오래 근무했고, 행정 경험이 대부분이었음에도 교장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영천여고는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한 유래 깊은 학교이지만 졸업생 출신 교사들조차 교화(매화)나 교목(향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놀란 허 교장은 대내외적으로 작은 홍보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교화 심기 캠페인’을 벌였다. 학생들은 직접 매화를 심고 꽃 팻말도 만들면서 학교의 상징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애교심과 주인의식을 갖게 된 건 물론, 서로 협력하면서 학교폭력 문제까지 감소하는 등 기대치 않은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3사관학교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주니어 ROTC’(J-ROTC) 사업도 시작했다. 군인‧경찰‧소방관 등 ‘제복’과 관련된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간접경험과 기회를 제공해주자는 취지였다. ROTC 출신 예비역 장교가 강사로 초빙됐고, 학생들은 이를 통해 병영체험, 체력단련, 리더십 교육 등에 임하면서 관심 분야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자긍심도 갖게 됐다. 이외에도 학교 동창회를 통한 기부 특강, 밤늦게까지 공부하길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심화자율학습반 운영 등 다방면에서 학생들을 위해 나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공모형) 두드림학교와, 125억 원 규모의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공모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낡은 건물 대신 쾌적하고 현대화된 건물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허 교장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4월 10일 한국학교발명협회가 주최한 ‘2021 대한민국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서 2학년 학생 7인으로 구성된 C.I.S팀(팀장 백지우, 팀원 박주영‧신나라‧김미소‧권아름‧염혜영‧김은영, 지도교사 김은경)이 도전과제 B(과학원리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는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Destination Imagination)에서 제시한 6가지 분야의 도전과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면서 즉석과제를 완수하는 대회에요. 그중 우리는 과학이론 분야에 참여했고,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했어요. 그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고 기록해 제출해야 했죠. 배경부터 촬영, 편집까지 전부 팀원들이 직접 해야 하고, 창의성과 상상력, 과학적 원리를 어떻게 융합시키느냐가 심사에 정말 중요하게 작용해요. 물론 저희가 주도적으로 했지만, 교장 쌤과 김은경 쌤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그런 대회가 있는지조차 몰랐을 거예요.” 

백지우 팀장의 말이 끝나자, 다른 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친구들이 교장 선생님 앞이라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학생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정말 착해요. 여자애들이라 섬세해서 그런지 의상도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고요. 토요일에 주로 했고, 평상시에는 방과 후 틈틈이 했어요. 아이들의 잠재력이 정말 상상 이상이었어요.”

김은경 교사는 담뿍 애정 담긴 눈으로 C.I.S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C.I.S팀은 국내대회에서 우승한 뒤 대한민국 대표로서 ‘2021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참가했다. 인터뷰할 당시에는 세계대회 결과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번 대회 기간뿐 아니라 평소에도 선생님들이 진로 상담을 잘해 주시고 고민도 사소한 것까지 귀담아 들어주세요. 그래서 저희가 더 힘을 낼 수 있었어요.” 

그다음으로 입을 연 박주영 학생은 “저희가 이번에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대회에 출전한 거잖아요. 언젠가 한국이라는 곳을 벗어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때가 온다면, 그때를 대비해 미리 간접경험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나중에 외국에 나가더라도 떨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고요.”라며 이번 참가를 계기로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팀원들 정 가운데 앉아 있던 신나라 학생은 “전 만들기 쪽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창의력 쪽에선 취약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고 협력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이번 대회는 저 스스로에게도 자극이 많이 됐고, 제게 더없이 소중한 자기 계발 기회를 마련해 줬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이번 대회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돼서 떨리는 게 조금 덜했어요.”라며 수줍게 덧붙였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공감대가 비슷해진 걸까. 다른 팀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줬다.

“우리 학교는 매달 ‘가정의 날’이라고 해서 마지막 주 금요일은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야간자율학습이나 다른 일정 없이 학생들을 가정으로 보내줘요.”

친구들이 이미 대회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지 김미소 학생은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더니 돌연, “일주일에 한 번씩 ‘가정의 날’을 해주세요!”라고 허 교장을 향해 간곡히 부탁했다. 그 난데없는 요청에 허 교장을 필두로 모두가 자지러지듯 웃음을 터뜨렸다. 

한바탕 웃음이 좌중을 휩쓸고 지나간 뒤 권아름 학생이 입을 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개인이 하는 부분과 팀원이 함께하는 부분이 모두 중요했어요. 즉석과제를 할 때는 5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있던 탓에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는 게 필요했죠. 그런데 마음이 급박해지다 보니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갈등이 있었어요. 하지만 서로 배려를 많이 했고, 평상시 연습 과제를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연습한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권아름 학생은 이번 대회를 통해 팀원 개개인의 역량도 증가했지만, 함께 난제를 해결해 가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협동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왼쪽에 앉아 있던 염혜영 학생이 입을 열었다. 

“올림피아드에서 하는 활동이 의상을 만들거나, 스토리를 짜거나, 작곡을 하는 등 학교에서 하던 활동과는 매우 달랐어요.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 놓고도 이게 맞는 건지 의문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머리를 맞대며 아이디어도 내고 시행착오도 거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에 대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런 상을 받았다는 자신감이 앞으로 학교 활동도 더 잘할 수 있게끔 든든한 발판이 돼줄 것 같아요.” 

마지막은 김은영 학생 차례였다. 

“전 대회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게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걸 잘 잡을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와주세요. 가령 전 평소 봉사활동을 좋아해서 필리핀에 가서 학용품이나 옷을 교환하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했고, 과학지식 기부활동을 위해 지역아동센터에도 갔었어요. 또 교사나 간호사가 꿈이라서 근처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돌봄 형태의 현장 교육도 지원해 봤어요. 그런데 봉사활동이란 게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제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셨어요.”

그러자 곁에 있던 김은경 교사가 김은영 학생이 경북 최초로 ‘유관순 횃불 상’을 수상했다고 귀띔해줬다. 유관순 횃불 상은 유관순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교훈 삼아 학교와 사회를 위해 선도적으로 활동한 전국 고등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 영천여고 허영선 교장
▲ 영천여고 허영선 교장

행복한 학창시정 위해선 부모와 교사의 노력이 필요

학생들이 말하는 내내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던 허 교장에게 끝으로 교육관에 대해 물었다. 허 교장은 긴 고민 없이 입을 열었다. “교육관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학생들이 그저 행복할 수 있게끔 부모는 부모로서, 교사는 교사로서 각자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선생(先生)’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먼저 살아온 사람’이란 의미잖아요. 그렇게 먼저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진로‧진학 등과 관련해 무엇이 좀 더 나은지는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 원하는 것은 들어주되, 필요할 때는 통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올바른 길로 잘 이끌어주는 것이 교사와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고등학교에서 보내는 3년이란 시간은 지나고 나면 긴 시간이 아닌데, 대학진로를 위해 학업에 매달리는 당사자에게는 참으로 더디고 괴로운 시간일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탐색하고 노력함으로써 결실을 맺는다면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믿음 아래, 허 교장은 자신이 영천여고에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이 많이 행복해하며 즐겁게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기 직전 허 교장은 학부모와 영천시민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제는 학교가 학부모님과 지역 주민 모두와 함께 학생의 교육에 대해 소통하고 협력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부모님들이 바쁘시더라도 학교에서 하는 학부모회나 학교설명회에 많이 참석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요즘은 학생들 간에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의해 처리되다 보니 학교현장이 무척이나 삭막하고 딱딱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교육적으로 처리할 문제이거나 학생끼리 금세 화해할 수 있는 경우마저도 경직되게 처리하는 거죠.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스승과 제자가 있는 학교, 행복한 학창시절의 기억이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 학교를 학생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어요.”

허영선 교장은 참된 선생이었다. 먼저 삶을 거쳐 온 사람으로서 기꺼이 후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자세로 살기에 학생들이 저토록 밝은 웃음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학교를 나서기 전 C.I.S 팀원 모두가 깍듯하고도 환한 배웅의 인사를 건넸다. 녹음 짙은 여름철 잎사귀의 싱그러움을 품은 아이들의 웃음은 세월의 때에 찌든 삶을 씻어내는 세례와도 같았다. C.I.S 팀원 모두가, 또 영천여고 학생 모두가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멋진 청년으로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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