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UN 총회에 앞서, 지난 9월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재로 화상으로 개최된 '에너지와 기후에 관한 주요경제국포럼'(MEF)에 참여하고 있다/사진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UN 총회에 앞서, 지난 9월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재로 화상으로 개최된 '에너지와 기후에 관한 주요경제국포럼'(MEF)에 참여하고 있다/사진 청와대 제공

“11월 제26차 UN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추가 상향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발표하기 위해 막바지 준비에 힘쓰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UN 총회에 앞서, 지난 9월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재로 화상으로 개최된 '에너지와 기후에 관한 주요경제국포럼'(Major Economies Forum on Energy and Climate Chage, MEF)에서 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앞서 9월 24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을 공포했으며, 이로써 세계에서 탄소중립을 법으로 규정한 14번째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탄소중립기본법은, 2020년 5월부터 시행해오던 기존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대체 및 강화한 법안으로서, '2050 탄소중립'을 국가비전으로 명시하고, 이를 위한 국가 전략, 중장기 NDC, 기본계획 수립과 점검 등 그 이행절차를 구체적으로 체계화한 법이다.

법안에서는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로 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의 중간목표로서 '2030 NDC 하한선'을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2030년까지 적어도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를 감축하라는 뜻이다.

현재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한다는 내용의 상향안을 제시하고, 10월 8일 이에 대한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각계로부터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 오는 10월 18일 상향안을 심의·의결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상향안에 대해 각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의결까지 불과 열흘이란 짧은 시간만 주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 의견 수렴 과정이 단지 COP26을 앞두고 서둘러 NDC를 결정하기 위한 정부의 보여주기식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환경단체 측은 정부가 설정한 ‘2030 NDC 하한선’이 지나치게 안일한 목표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청년단체 모임 ‘2040 기후중립 청년제안’(기후청년제안)은 "현재 2018년 대비 35~40% 감축으로 가시화된 대한민국의 새로운 NDC로는 탄소중립기본법과 파리협정의 2˚C 목표 마지노선조차 지킬 수 없다"라면서, 정부가 어떤 근거로 NDC를 설정 중인지 명백히 답할 것을 촉구했다.

파리협정(파리기후변화협약)은 2020년 시효가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해 2015년 UN 기후변화 회의에서 새로이 채택한 기후협약으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라는 전 지구적인 장기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요컨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로 제한하는 걸 추구하되, 그러지 못할 경우라도 최소한 2℃로는 제한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때 2℃라는 목표치는 세계 다수의 기후학자가 장차 닥칠지도 모를 기후재난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의견의 일치를 본 임계점에 해당한다. 지구 온도가 그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나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마지노선인 것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국가별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중장기 NDC를 설정해 UN에 제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행 계획에 돌입했다. 우리나라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과, 2015년 6월 최초로 제시돼 여러 차례 수정 및 보완 작업을 거친 ‘2030 NDC’ 설정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환경단체는 여전히 NDC가 낮은 수준이라며 그 상향을 요구하고 있고, 특히 국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의 불명확함과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며 맹공을 가하고 있다.

기후청년제안은 "산업계가 현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어 더는 감축이 어렵다고 하지만, 정작 2014년 1.4조 원에 달하던 에너지 절감 투자비는 2019년에 0.9조 원까지 줄었다"라면서, "산업계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하지 않고 전환을 막고만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산업계가 최선을 다해 감축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업장 온실가스 감축실적 명세서를 공개하도록 조치하고, 산업계가 감축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산업 부문 NDC를 상향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이들은 정부가 일찍이 선언한 '2050 탄소중립' 목표치를 훨씬 앞당겨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2030 NDC 역시 기존의 35%가 아닌 최소 60%를 하한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의 김주진 대표 역시 현재 정부가 제시한 상향안은 국제적인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에 불충분하다고 꼬집으며, "한국은 파리협약에서의 공정한 분담을 충족하려면 2030년까지 2017년 기준 최소 59%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환경단체의 입장과 달리, 감축 당사자인 기업들은 35% NDC 하한선조차 완수하기 버겁다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 대상 업체 35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126개 업체로부터 응답을 받아 그 결과를 지난 10월 5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26개 기업 중 68.3%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명시된 2030 NDC가 “과도하다”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30 NDC가 과도한 이유로는 배출권 구매, 규제강화에 대한 대응 등 기업부담이 증가하고,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구조 상 감축 여력에 한계가 있으며, 2030년까지 탄소 감축 기술의 상용화가 어려운 것 등을 꼽았다. 또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도 한계가 있어 전력요금 인상으로 기업 부담이 추가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들 중 84.1%는 2030 NDC가 상향될 경우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응답했다.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한 비율도 30.1%를 차지했다. 탄소중립 정책 대응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대응계획 수립을 완료했다는 응답은 3.2%에 불과했고, 대응계획을 수립 중이라는 응답이 67.4%, 아직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29.4%였다.

이들은 탄소중립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적극적인 산업계 의견 수렴을 통한 감축목표 수립'을 들었는데, 65.1%에 해당하는 기업이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산업계의 의견을 일부만 반영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23.8%는 정부가 산업계의 의견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절반에 가까운 기업이 정부가 산업계의 의견을 가장 우선적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오직 2%만이 시민단체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환경단체와 산업계의 입장 차이는 극명하다. 이들 사이에서 중재안을 마련할 주체는 정부뿐이며, 따라서 중장기 NDC 수립 등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해가는 과정에서 사회 각계로부터 편향 없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탄소중립은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의 체질과 근간을 바꾸는 중대 사안인 만큼, 단순히 정부의 치적 세우기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라도 차근하고도 신중히 진행해가야 할 국가적 전략 사업이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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