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뉴스=최우림 기자]

근래 들어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K드라마나 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와 함께 ‘국뽕’이라고 할 만큼 이 나라에 살고있는 우리의 자부심도 크게 올라가고 있다. 가끔 우리는 국내 드라마를 보면서 그 컨텐츠들을 만드는 배경 구석구석에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혹시 대하드라마 <태조왕건>, <장희빈>, <대조영>, <천추태우> <명성황후> <제국의 아침> 등의 타이틀 시안을 쓴 사람이 모두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국회의원 서도실 지도위원이기도 한 ‘초당 이무호’ 교수는 서예 분야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망을 가진 인물이다. 그야말로 초당 이무호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이다. 사실, ‘이무호’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의 글씨를 못 본 사람은 드물다. 서예를 문화적 가치로 계승하고 방송 소품 문화로 정착시킨 인물도 바로 그이다. 

그는 단지 유명인에 불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유명 컨텐츠들의 타이틀만 쓴 유명인에 불과한 사람이 아니다. 여러 미술대전에서 가장 존경받는 심사위원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문화예술행사에서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는 공로로 2012년 옥관문화훈장을 정부로부터 수훈받기도 했다. ‘초당’이라는 호를 가진 그는 ‘태극서법’이라는 특별한 서체를 개발해낸 창시자이기도 하다. 여러 부분에서 그는 한국 서예 문화의 가장 굵은 리더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은 아니었다. 경북 영덕군 칠보산 기슭의 가난한 집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6·25 전쟁에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비교적 일찍 천자문을 익힐 수 있었다. 남보다 빠른 서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 2018년 칠순 기념 전시회를 가졌다. 매우 연로 하지만 여전히 60년 이상의 그의 필력은 매우 힘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전체심사위원장이자 운영위원으로도 그는 예술계에 매우 의미깊은 자국을 남겼다.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 3부자 기념관 삼소사와 광동성서법박물원, 호남성 장사미술관, 심양시화평문화원, 요녕성 온강 전쟁기념관 북경 조양구 미술원에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덕망을 두루 갖춘 리더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여자컬링팀과 최민정, 이승훈, 윤성빈 등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수고한 선수들에게 보낼 작품을 준비하고 이상화 선수와의 우정과 경쟁의 레이스를 통해 인상깊었던 일본 선수 고다이라에게도 이상화와 고다이라를 함께 형상화한 글씨를 전달하는 등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에피소드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와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초당은 ‘태극서법’이라는 특별한 서체를 개발해낸 창시자이다. 그의 서체를 본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서예가 글씨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는 중국 갑골문을 비롯해 청동기시대 금문, 왕희지 필체에 육조 진, 당나라의 해서 등 300여 종류의 다양한 법첩을 연구했다. 초당은 중국을 드나들며 온갖 서법을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운필방법과 결구를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음양오행에 입각해 창안했다. 여기에 어린 시절 자연과 벗삼으며 궁금해했던 자연의 이치를 보태서 ‘태극서체’를 만들었다고 그는 밝혔다. 그의 글씨에는 음양오행의 특별한 기가 서려 있다고 한다. 미국 무기회사 록히드마틴은 초당의 작품을 걸어놓고 보잉사를 인수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록히드마틴은 ‘락희도마진(樂喜到鷌鎭)’이라는 그의 글씨를 소장하고 있다. 한국 방위사업청이 선물했다.

 

국회의원 서도실 지도위원으로 일하며

대한민국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신을 가다듬으며 스스로의 소양을 쌓아 가기 위해 운영되는 서도회라는 모임이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장을 비롯해 수많은 걸출한 국회의원들이 ‘서도회’의 멤버이다. 의원들을 지도하면서 그는 국내에 정책들을 담당하고 있는 의원들이 스스로의 정신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바로 서예를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서도회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역사가 매우 깊다. 적어도 25년 이상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국회 서도회가 만들어진 이래 이무호 교수는 계속해서 정치계 인사들과 관련을 맺어 왔다. 직접 서예를 지도하게 된 지는 올해로 8년째가 되었다. 

 

서예가들의 모임, ‘세계 문화예술 발전 중심’ 

초당 이무호 선생이 26년 전 만든 예술 단체가 있다. 바로 서예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모임, ‘세계 문화예술 발전 중심’이 그것이다. 이 모임은 그 당시로서는 조금 생소했던 해외교류 문화예술활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외국 서예가들과의 문화 교류를 통해 서예 문화의 발전을 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의 서예가 단순히 선배가 후배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계승이 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전달’만으로는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70년도 중반, 대만을 방문해 그들의 작품들을 보면서였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쓴 그는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창조적인 서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생각은 혁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그는 먹고 자는 시간을 뺀 모두 시간을 서예 공부에 투자했다. 그런 노력 끝에 자신만의 서법을 만들었다. 최고의 서예가지만 그는 자만하지 않는다. 지금도 서예 공부를 매일 거르지 않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외국을 다니며 자신의 독창적인 서체를 위한 여러 공부를 했다.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고 연구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강도 높은 창작 활동들을 했다. 중국의 사천 서법 문화예술대학에 가서 강의를 했고, 상해 복단대에 가서도 강의를 했다. 그러면서 실기 위주의 글쓰는 ‘법첩’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중국의 왕이지 글씨체 등을 깊이 연구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어느 사이엔가 이무호 교수는 중국에서 널리 이름을 알려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1월 1일 제 26회 ’세계문화예술대전’을 국회의원회관 3층 전시실에서 개최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세계 문화예술 발전 중심’이 주체가 되어 문화교류를 하고 서로의 서예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세계 속의 한국적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현재 이 전시회는 중국과 우리나라 등 세계 20개국의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의 주축이 되어 진행한다. 때문에, 예술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외국과 함께 진행하는 범 세계적인 문화 예술 활동의 본부가 한국에 있는 사례는 ‘세계 문화예술 발전 중심’이 유일한 사례이다. 

그 간, 이 전시회에는 중국 등 외국의 최고 대가들 뿐만 아니라, 국내의 역대 대통령, 국회의장, 그 외의 국회의원, 여러 공무원들이 참여했다. 중국 정계의 최고 지도자들과 국내의 최고 정치인들이 문화적 교류를 가지다 보니, 한중 관계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전시회들이 있어 왔고 ‘세계 문화예술 발전 중심’은 그런 예술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서예는 그야말로 ‘선의 예술’이다. 청와대를 비롯해 경찰청, 국가기록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쟁기념관 등에는 그의 작품이 선으로 이어진 예술로서 숨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보1호 숭례문비 해설문이나 3·1만세운동발상지비도 그의 작품이다. 국내외를 통해 그의 작품은 동양의 문화를 한데 묶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을 통해 통합을 이루어 내다.

얼마 전 초당 교수는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전시회를 하고 왔다. 경상북도와 우즈베키스탄의 경제협력을 기해 우즈베키스탄 본토에서 문화적 교류 차원에서 서예 전시회를 가졌다. 초당은 그 나라 대통령에게 작품을 써주고 타수간트 주지사에게도 작품을 써주었다. 전시회가 진행된 곳은 ‘고려인 문화예술의 집’이라는 곳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 이곳의 건립을 추진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곳 개관식에 함께 했다. 국제적 통합 차원에서나 역사적으로 볼 때도 매우 의미 있는 행사였다. 

예로부터 관념적인 차이와 의식적인 차이를 뛰어넘는 것은 바로 예술 분야였다. 초당 이무호 교수의 발자취와 현재 활동들이 현재 사회적 이슈인 서로 간의 이견과 관념적 차이를 평화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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