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과 파맛. 도저히 조합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캘로그는 여기에 ‘민주주의’라는 메타포를 통해 둘을 연결하고 신상품을 출시했다.
시리얼과 파맛. 도저히 조합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캘로그는 여기에 ‘민주주의’라는 메타포를 통해 둘을 연결하고 신상품을 출시했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지난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서 많은 소비자들이 내걸었던 모토였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사실 매우 논리적이지 않은 말이다. 독립운동은 한 나라의 영토, 주권을 되찾는 운동이지만, 불매운동은 그냥 특정한 소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비란 욕구를 충족하고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가치’라는 것이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소비를 하는데 ‘가치’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가치소비’이다. 그런데 이제 가치를 넘어 또다른 무언가가 이 소비행위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바로 ‘재미’이다.

계량화된 소비로 행복감 느껴

가성비와 가심비에 이어 ‘가잼비’가 뜨고 있다. 물건을 사면서 느껴지는 소소한 재미에 열광하는 세태를 말한다. 이러한 소비자들을 지칭하는 ‘펀슈머(Fun+Consumer)’라는 말도 만들어졌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이제 소비의 기준으로 ‘재미’가 관여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 해 7월 켈로그는 ‘첵스파맛’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시리얼과 파맛. 언뜻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16년 전 켈로그에서는 ‘첵스나라 대통령선거’라는 이벤트를 하면서 초콜릿파의 ‘체키’와 파맛파의 ‘차카’를 대결시켰다. 

소비자들은 파맛의 차카를 선택했지만, 캘로그는 당선을 무효화하고 초콜릿파 체키를 당선시켰다. 이후 16년깐 꾸준히 부정선거에 대한 희화화된 논란들이 있었고 결국 캘로그는 이런 부정선거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첵스파맛’을 출시했다. 그저 인터넷 상의 재미인줄로만 알았던 일이 현실의 상품출시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을 이른바 ‘도른자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도른자’란 ‘돌은 자(미친사람)’을 의미한다. 미치지 않고서가 기획할 수 없는 마케팅을 의미한다.

식품회사인 빙그레는 ‘빙그레 더 마시스’라는 캐릭터를 등장해 온라인에서 마케팅하고 있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내세운 스토리텔링에서는 주인공이 ‘노잼’이라는 죄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고 군대식 체벌을 받기도 하는 등 식품과는 별반 관계없는 활동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의 인기는 대박이다. 제약회사인 대웅제약은 우루사 티셔츠와 슬리퍼를 만들기도 했고 천마표시멘트를 만드는 성신양회 역시 가방과 슬리퍼를 출시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엉뚱한 제품들이라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든다.

시멘트를 제조하는 성신양회에서 가방을 출시했다. 외형은 마치 ‘시멘트 포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시멘트를 제조하는 성신양회에서 가방을 출시했다. 외형은 마치 ‘시멘트 포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빙그레가 캐릭터로 활용하고 있는 ‘빙그레 더 마시스’. 때로는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빙그레가 캐릭터로 활용하고 있는 ‘빙그레 더 마시스’. 때로는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지속성에 대해서는 의문

이러한 도른자 마케팅과 펀슈머의 등장 배경에는 답답한 사회적 환경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불황에는 짧은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말도 있듯,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함과 우울함을 이러한 ‘가잼비’를 통해서 일시적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마케팅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일부에서는 ‘허를 찌르는 마케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단순한 재미에 근거한 마케팅이 제품의 브랜드와 지속가능한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한 노래의 가수는 10년, 20년 동안 대중들에게 사랑받는다. 자신의 ‘18번’이라는 말로 애창곡을 지정하고 두고 두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개그는 다르다. 한번 했던 개그를 두 번째 하는 순간 ‘그게 뭐냐’, ‘재미없다’는 말이 나온다. 

개그맨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고충을 호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도른자 마케팅들이 큰 히트를 했다고 치더라도 브랜드 확장에 도움이 되기는 힘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루사가 만들 슬리퍼의 경우가 그렇다. 전문 슬리퍼 제조사인 나이키나 아이다스의 경우 슬리퍼에서도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위해 노력하지만, 우루사가 슬리퍼 혁신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장기적인 비전에 있어서는 기존 브랜드를 따라 가기도 힘들다.

펀슈머의 등장과 도른자 마케팅은 말초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일회성 이벤트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이 장기적으로 추구해야할 전략이라고 확신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다만 이러한 마케팅을 통해 제품 자체의 인지도를 상승시킬 수는 있다. 건축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젊은세대가 ‘천마표 시멘트’를 알기는 쉽지 않고, 아직은 젊어서 우루사를 먹지 않아도 되는 청년들에게 ‘우루사’는 쉽게 인지되지 않는 브랜드다. 하지만 이러한 색다른 기회를 통해 브랜드를 대중적으로 알린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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