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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8년간 장애인 운동권 1세대로 한 역할, 앞으로도 꾸준히 장애인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김락환 회장
  • 기사등록 2021-04-26 1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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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은 ‘제41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이다. 1981년부터 정부에서 공식적인 기념일로 지정했으며 꾸준하게 기념행사를 해왔다. 이날 행사에 기념사를 한 사람은 바로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 분야를 일깨우고 장애인 단체를 처음으로 만든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김락환 상임대표이다. 현재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회장도 겸임하고 있는 그는 지난 38년간을 장애인 운동가로 살아온 장애인계의 원로이자 노장인 1세대 출신이다. 그 역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는 3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어느덧 올해로 40년을 이어오며 자신을 넘어 수많은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한국교통장애인협의회 김락환 회장과 부인 허순연 여사(사진=백경화 기자)

코로나19로 더욱 바빠져한국교통장애인협의회 김락환 회장과 부인 허순연 여사.jpg

장애계에서 ‘김락환’이라는 이름은 전설에 가깝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장애인 단체의 설립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으며 지난 1987년, 국내 최초의 장애인 일자리 마련을 위한 ‘자립회관 개관’의 건립이 벽에 부딪혔을 때 경북 구미에서 경찰추산 1만 명의 장애인이 집결한 궐기대회를 주도했으며, 그 결과 1989년 끝내 회관을 건립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는 장애인 단체의 출범을 알리는 첫 신호였다. 또한, 그는‘장애인 당사자 단체(현 한국지체장애인협회의 전신)’를 이끌면서 대한민국 장애인 주도의 사회적 운동을 이끌어온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제41회 장애인의 날 행사 기념사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장애인 인권보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활동지원서비스 제공에 가족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어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활동지원서비스 수가를 낮게 조정하더라도 가족이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기업은 일자리 창출의 기초인 장애인 의무 고용과 소득 증가에 노력해야겠습니다. 또한, 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가 일을 함으로써 수급자를 벗어나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방안을 마련해야겠습니다.”

김락환 회장이 이렇듯 매우 정확하게 장애인 정책에 대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들의 삶을 보살피며 그들의 애환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장애인들의 심신발달을 위한 장애인 체육 쪽에도 많은 역할을 해왔다. 장애인육상연맹을 맡기도 했고 2014년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을 맡아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종합2위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교통장애인협회를 운영해 오면서 많은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교통유자녀 장학금 전달, 장애인 보조기기 지원, 교통정의상 시상식과 교통사고 장애인 재활상 시상식, 송년 위안 행사, 장애인 정보화 경진대회 등을 개최해왔다. 코로나19로 그는 더욱 바빠졌다. 장애인 확진자들은 일반 확진자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경북도내 코호트격리시설 41곳에 1,172만 원을 기부했으며 자가방문, 주거 편의 서비스, 안부확인 서비스, 무료세탁 서비스, 동행 지원 서비스 등 긴급돌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 38년 전의 초심이 고스란히 지금도 실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큰 변화에 감개무량하기도

그가 장애인 관련 운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자신이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엄청나게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82년 8월 7일, 31세의 한창나이에 교통사고로 흉추 5~6번을 다쳐 경북대병원으로 후송됐다. 수개월 입원치료와 병행했던 통원치료 중에 흉추 교환 수술, 욕창으로 인한 피부 이식수술, 근육이동수술 2회, 척추 꼬리뼈 절단 수술, 항문 절개수술 등 여섯 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당시의 그는 제대로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 신체적 고통과 함께 세상으로부터의 멸시와 사회적 소외감 때문에 여섯 번이나 자살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다섯 살 난 딸과 갓 돌이 지난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내(허순연 여사)의 정성으로 인해 ‘한번 해 보자’라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장애인이 되어보니 정말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주인이 ‘병○이 아침부터 와서 재수 없다’라며 소금을 뿌리기도 했고, 장애인이라면서 방을 얻기도 힘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동기회가 만들어졌을 때 4명의 친구가 저를 회장으로 추천을 했는데, 막상 저에게는 한 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추천한 사람은 표를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제 아내가 무려 10년을 저를 업어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오기가 생겨서 저의 전공인 토목으로 사업도 하고 장애인 운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장애인 운동은 하나하나 결실을 맺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재를 털어 대지 442평, 건평 156평의 경북장애인재활자립복지회관을 지어 국가에 기부했고 이곳은 지금까지 수많은 장애인이 근무하는 장애인 기업이자 교육장으로 발전했다. 1992년에는 ‘장애인도 인간이다. 할 수 있다’는 모토로 중부신문을 창간하고 이후 인터넷방송국도 만들어 우리나라 지역신문의 최선두에 자리매김하게 했다. 1998년에 세운 장애인복지공장 또한 경북도 내 유일한 공장으로 도내 최대의 장애인 근무 공장이 되었다. 

김락환 회장은 최근 수년간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대책이 세워지고 실천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교통사고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산재보험은 근로자가 일을 하던 중에 다치면 적용되는 것으로 평생을 국가가 책임을 져줍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다릅니다. 최고 배상금액이 10억 정도 되지만, 그걸 한꺼번에 받기 때문에 주변의 가족, 친척들이 돈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4년이면 그 돈은 다 소멸됩니다. 그 이후 교통장애인의 삶은 매우 열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국가 경제가 발전했다면 그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자동차 회사와 국가가 지어야 합니다. 산재와 같이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얻어 일을 못 하는 사람의 삶도 국가가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김락환 회장은 지난 38년의 장애인 운동으로 인해 변화된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 감동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장애 후 바깥출입이 거의 없었던 중증 장애인과 보호자 등 200여 명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항공사의 배려로 휠체어를 싣고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을 때 감개무량함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와상 중증 장애인이 장애인 정보화 경진대회에 참석하여 경기를 치르는 모습, 무장애도로 조성사업으로 하나둘씩 무장애도로와 공원시설을 개선하여 장애인의 이동접근영역이 넓혀질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세상

이러한 다양한 활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김락환 회장의 역할과 위상을 인정해주고 있다. 

“제가 만들어 왔던 기업들과 언론 ․ 장애인 조직 등 모든 분야를 함께해온 이들과, 지방 유지 ․ 정치인과 공직자분들은‘당신과 함께 하는 장애인 관련 기업 복지관 조직은 참으로 일사불란할 뿐만 아니라 당신을 잘 따라 준다.’라며 밉지 않은 질투로 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함께 싸우고 부딪쳐온 분들과 나누었던 모든 것은 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 자산으로 구축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얻은 저력이 중증 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국립 금오공과대학의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영광의 동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실질적으로 가진 유형적 자산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김락환 회장은 참으로 할 일이 많다.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가 더욱 많은 분야에서 마련되어야 하고 편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생활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또한, 일자리 창출에 있어서의 기본인 장애인 의무고용과 소득 증가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비장애인들에게도 협조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구성원으로 온전히 이해하도록 장애인 인식개선에 더욱 앞장서주시고, 편견과 혐오가 없는‘서로 다름’을 인정하여 차이를 이유로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고 힘써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여건에 놓여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을지는 모르지만, 한해에도 수많은 사람이 장애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위해 더욱 힘을 써야 하는 이유이며, 또한 김락환 회장이 앞으로도 더욱 공을 들여 장애인 운동을 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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