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조영환

▲ 수필가  조영환
▲ 수필가  조영환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갈등을 넘어서 초갈등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초갈등 사회란 “사회 문제를 두고 집단 간 갈등이 극에 달한 사회”를 말한다. 여기서 '초'란 '뛰어넘다', '극단화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사회적 갈등이 극단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박준 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은 “2010년대부터 한국의 사회 갈등 수준은 OECD 국가 중 종교 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갈등으로 소모된 돈이 연간 245조 원에 이른다고 했다. 정치 영역에서 여야의 대립은 정치 혐오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일자리와 연금을 둘러싼 노사 간, 세대 간 대립은 국가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동서로 나눠진 지역갈등은 시간이 흘러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은 해묵은 레드 콤플렉스(붉은 의식 잠재 관념)라는 괴물을 지금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이런 갈등 요인들로 인해서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별히 사회 통합을 가장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 것은 바로 정치 갈등이다. 정치란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로 인해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갈등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사회 구성원들의 몫이 되고 있다. 

이렇게 초갈등 사회가 도래한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김동연 박사는 지난 광주 조찬강의에서 그 원인을 기울어진 사회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승자 독식의 사회 구조, 가진 자들의 리그와 기득권 카르텔, 부와 지위의 대물림, 그런 상황들이 극단화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공정이 가속화되면서 사회 갈등과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초갈등 사회의 도래는 단지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초갈등 사회의 기저에서 우리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놓인 연약한 인간 본성을 보게 된다. 정치란 이 자연 상태에서 투쟁 가능성에 놓여 있는 인간들이 그 가능성을 잠재우는 사회 계약 시스템이다. 

그러나 현대 정치는 이런 사회 계약적 가능을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투쟁을 부추기고 있다. 그 이유는 정치의 주체들 역시 경쟁 속성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갈등 사회의 원인은 역시 경쟁과 대립에 함몰된 현대인의 투쟁적 속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기중심적 투쟁의 속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본성적 요인이 오늘날의 초갈등 사회를 더욱 심하게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초갈등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윤리적 성찰을 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초갈등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야만의 본성만을 가진 존재가 절대로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주목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절대 이성, 즉 정언(定言) 명령으로서의 선의지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인간은 선의지에 기초해서 갈등을 싫어한다. 그래서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하나의 사회적 담론이 될 수 있다면 초갈등 사회의 부정적 현상을 조금씩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화해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사랑, 관용, 화평, 공감 등 절대로 변하지 않는 최고의 덕목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영속적 가치를 가진 덕목들 중에서 초갈등 사회에 화해와 상생의 길을 위해 제시하고 싶은 한 가지 덕목은 조화가 아닐까 싶다. 

조화란 기본적으로 갈등의 상대어가 될 수 있다.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갈등은 서로 다름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이 서로 다름이 서로 다툼의 상황으로 전개되면 갈등이 심화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요소들이 미학적 조율을 통해 위대한 심포니(교향곡)가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심포니가 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요소를 조화시켜야 한다. 

갈등은 대립과 분열과 투쟁으로 인한 비극을 낳지만, 조화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 지금 지구촌에 만연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화의 덕목이 필요하다. 갈등 사회 대신에 조화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해 주고, 관용의 미덕을 보여 주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지극히 상식적이고 단순한 덕목들이 조화롭게 구현되지 않기 때문에 초갈등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갈등문제의 부정적 해법은 용서함에 있다 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용서 하여야 한다.”라고 하셨다. 산술적 계산이 아니라 '한없이 용서하라'는 뜻인 '관용'인 것이다. 

갈등 해소를 위한 예수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이다. 용서하면 화해와 상생의 길이 열리게 되고, 사회는 아름다운 조화의 세계가 될 것이라는게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은 초갈등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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