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탄소와 전쟁 中…친환경 규제는 강화, 친환경 투자는 확대

▲ 탄소중립 정책은 가격 메커니즘 기반 시장 활용 여부에 따라 ‘시장기반 정책’과 ‘비시장기반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사진 Pixabay 제공
▲ 탄소중립 정책은 가격 메커니즘 기반 시장 활용 여부에 따라 ‘시장기반 정책’과 ‘비시장기반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사진 Pixabay 제공

이상기후 현상이 심화되고 자연재해의 빈도 및 심도가 증가함에 따라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은 다양한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해 왔으며, 이러한 탄소중립 정책은 가격 메커니즘 기반 시장 활용 여부에 따라 ‘시장기반 정책’과 ‘비시장기반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장기반 정책은 매수자와 매도자 간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조성해 경제주체가 자율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탄소배출권거래제, 탄소세, 탄소국경조정세가 이에 속한다. 비시장기반 정책은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거나 민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직접규제, 공공투자, 금융지원 등이 있다.

시장기반 정책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시장을 통해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총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해진 상황에서 배출권을 할당받은 각 기업은 할당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며, 부족하거나 남은 배출권은 거래를 통해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다.

만약 온실가스 감축 설비나 재생에너지 설비 도입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였다면 그만큼 남은 배출권을 시장에서 팔 수 있고, 당장의 설비 비용이 부담돼 도입이 여의찮다면 할당량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대해서는 필요한 만큼의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는 것이다.

현재 탄소배출권 시장은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도입이 확대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5년부터 시작된 EU 탄소배출권거래시장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으로, 2020년 기준 전 세계 배출권 거래 규모의 87%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주 정부 단위로 시행하고 있으며, 중국은 2013년부터 베이징, 상하이, 광둥, 후베이 등 7개 지역 시범 거래시장을 설립 및 운영해 오다가 올해 7월 16일 전국 단일의 탄소배출권거래소를 출범시켜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에 발표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는 2,291억 유로(현재 환율 기준 316조 6,500억 원)로, 2018년 1,438억 유로(동 기준 198조 7,500억 원) 대비 약 60% 증가했다. 또 전 세계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탄소배출권 시장의 적용을 받는 비중 역시 2005년 5%에서 2021년 18%까지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 단위당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서, 종류가 다양한 온실가스에 대해 그 배출량에 온실가스별 온난화지수(GWP)를 곱해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이산화탄소 환산톤, tCO2e)을 적용해 계산한다.

탄소세는 적용하기 용이한 데다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유인책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세수 확보를 통해 재생에너지 등 신사업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탄소세 적용 국가의 기업이 비적용 국가의 기업에 비해 대외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우려 때문에 각국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데 꺼리고 있으며, 기업의 조세저항도 만만찮다. 이에 현재 EU 국가들을 필두로 25개국에서 시행 중이지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탄소세가 적용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5.3%에 불과하다.

또 탄소세율이 나라마다 편차가 심하다는 것도 문제이다. 가령, 스웨덴의 경우 이산화탄소 톤당 133.3달러의 탄소세율이 적용되는 반면, 영국은 23.2달러, 프랑스는 7달러, 폴란드는 0.1달러로 국가 간 격차가 극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IMF 권고 수준은 75달러/tCO2e인데, 25개국의 평균 탄소세율은 이산화탄소 톤당 29달러(29달러/tCO2e)였다.

▲탄소국경조정세는 역외 국가로부터 제품을 수입할 때 그 생산 과정에서 역내 생산 제품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대해서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그 역의 경우에는 탄소 감축 비용만큼을 환급해주는 조치이다.

이는 국가 간 비대칭적 환경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누출`을 방지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 탄소누출이란 고강도 환경규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려는 일부 국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환경규제가 약한 국가로 생산공장을 이전하는 등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효과가 축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EU에서 EU의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까지 줄인다는 목표로 2021년 7월 14일 발표한 12개 입법안 패키지 `Fit for 55`에 따르면, 탄소국경조정세는 세부 법안 수립 절차를 거쳐 오는 2023년부터 EU에 도입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지난 8월 11일 상원에서 통과시킨 3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예산안에 탄소국경조정세 도입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중산층과 저소득층 부담 증가를 이유로 승인을 보류하면서 그 추진에 있어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지만, 미국 역시 EU에 이어 탄소국경조정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규제 수준이 낮고 탄소배출량이 많은 중국, 러시아 등 주요 신흥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탄소국경조정세가 선진국 주도의 `신(新)보호무역주의`가 아니냐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들 신흥국은 탄소국경조정세가 파리기후협약의 대원칙인 상향식 방식(참여국 각자가 자국의 상황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방식)과 CBDR(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공통된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이란 의미로 선진국이 신흥국보다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며, 자유무역을 원칙으로 하는 WTO 조항도 위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시장기반 정책

비시장기반 정책으로는 우선 정부에 의한 ▲직접규제를 들 수 있다. 직접규제의 사례로는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선박 연비규제, 친환경 건축설계 의무화 등이 있다.

차례로 살펴보면, 현재 세계 주요국을 중심으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조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영국은 2035년부터, 프랑스와 독일은 2040년부터 휘발유나 경유를 사용한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금지할 것이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해 왔는데, EU가 Fit for 55를 발표하면서 이제는 EU 회원국 모두가 2035년부터 화석연료 사용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할 방침이다. 여기에 인도가 2030년부터, 캐나다와 중국,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행렬에 동참할 예정이다.

내연기관에 대한 직접규제는 자동차뿐만이 아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연료유의 황 함유량 규제 방침을 기존 3.5%에서 0.5%로 대폭 강화했으며, 오는 2023년부터는 해운업계의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EEXI(Energy Eficiency Existing Ship Index, 현존 선박의 에너지효율지수) 규제와 CII(Carbon Intensity Indicator, 선박 탄소집약도 지수) 규제 도입을 계획 중이다.

우선 EEXI는 신조 선박에만 적용됐던 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 Energy Efficiency Design Index) 규제를 현재 운항 중인 선박에까지 확대 및 강화 적용한 것으로서, 선박이 화물 1톤을 1해리 운송할 때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을 결정하고, 이 기준에 맞춰 선박의 엔진 출력을 제한하거나 에너지 절감 장치를 탑재하는 등 기술적 조치를 하도록 요구하는 규제이다.

적용 대상은 400GT(총톤수) 이상의 모든 선박으로서 현재 전체 대상 선박의 80% 이상이 EEXI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EEXI 규제를 만족하지 못할 경우 해당 선박은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또 EEXI를 만족했다 하더라도 선사는 운항 조치인 CII 규제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CII는 운송 단위별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선박을 A~E등급으로 분류하는 규제로서, 선박의 탄소 집약도를 낮춰 에너지 효율을 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C등급이 규정상 허용되는 최저 기준선이며, 이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경우 해당 선박은 시정조치를 거쳐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개선 계획을 승인받기 전까지는 선박의 운항이 중지될 수 있다.

CII는 기술적인 선박의 성능 개선뿐 아니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운항`까지 고려해야만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5,000GT(총톤수) 이상의 선박이 대상이며, 현존하는 컨테이너선의 92%, 벌크선의 86%, LNG선의 59%가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공공투자에 관해서는 최근 미국, EU, 중국 등 주요국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대규모 공공투자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선 미국 바이든 정부는 광범위한 기후변화 대응 관련 예산안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지난 8월 10일 1.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중 상당 부분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미국 인프라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그다음 날인 8월 11일에는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사회적 인프라 요소에 주안점을 둔 3조 5천억 달러 규모의 예산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현재 해당 법안들은 하원에서 교착 상태에 있으며, 미국 회계기준이 끝나는 오는 9월 30일 내로 해당 예산안이 통과하지 못하면 미국 연방정부 업무는 일시 정지(셧다운)된다.

유럽 역시 지난 2019년 12월에 `유럽그린딜`을 발표함으로써 향후 10년간 신재생에너지, 운송 및 건물 부문 인프라를 중심으로 1조 유로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유럽그린딜의 핵심은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중립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며, 앞서 언급한 Fit for 55는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정책 수단으로 제시된 것이다.

중국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환경 보호를 국가 핵심정책의 하나로 설정하고 철도, 전력망, 수처리 인프라를 친환경적으로 구축하는 등 공공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또 2020년 4월에는 기존 토목건설 중심의 인프라 사업과는 구별되는 디지털 인프라 사업인 `신(新)인프라건설` 발표를 통해 5G,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고속철도, 특고압 설비, 신에너지 자동차 7개 분야를 핵심 추진 과제로 삼았다.

이들 국가 외에도 영국, 일본 등이 친환경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따라 계획을 이행해 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이러한 주요국의 공공투자는 그 필요 규모를 고려하면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지원의 대표적 사례로는 정부, 지자체, 정부 출연기관 등에 의한 공적 금융지원을 들 수 있다. 가령, 세계 주요국은 일찍이 신규 석탄발전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전면 중지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우리나라도 올해 4월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 중단을 선포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중국 시진핑 주석이 9월 21일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UN 총회 기조연설에서 "개발도상국의 녹색 및 저탄소 에너지 개발 지원을 강화하고,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 건설을 중단할 것"이라고 공언함에 따라 이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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