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기준 법제화 국가는 14개국에 불과, 우리나라는 14번째

▲ 구속력을 갖는 징벌 조치가 없다 보니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기로 동의한 당사국들도 먼 미래의 장밋빛 계획안만 줄줄이 제시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됐다/사진 무디스 제공
▲ 구속력을 갖는 징벌 조치가 없다 보니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기로 동의한 당사국들도 먼 미래의 장밋빛 계획안만 줄줄이 제시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됐다/사진 무디스 제공

물론 이러한 국가 장기 목표에 대한 정치인들의 쇼맨십 논란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기후회담을 집행하기도 했던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의 켈리 심스 갤러거(Kelly Sims Gallagher) 에너지환경정책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번 글래스고 회의에 앞서 발표된 각국의 조정된 NDC는 실효성 있는 계획안이라기보다는 단지 '연극'에 가깝다. 

일례로 호주, 브라질, 뉴질랜드, 러시아, 싱가포르, 스위스 등은 지난해 NDC를 갱신했지만,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높게 잡는 대신 아주 사소한 변경을 단행했을 뿐이다. 갤러거 교수는 "그럼에도 '새로운 NDC를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기존안보다 훨씬 진보적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라면서, "이들의 NDC 조정안은 사실상 정치적 쇼맨십의 증거"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정치인들로서는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 실제 계획을 이행해가는 것보다 훨씬 쉬우며, 본인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포퓰리즘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파리기후협약 자체에도 문제의 불씨는 잠재해 있다. 

파리기후협약의 목표 설정 방식은 각국이 자국의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임의적으로 설정하는 '상향식'이다. 이는 구(舊)기후체제의 근거가 됐던 교토의정서의 하향식과는 정반대이다. 

또 목표 불이행 시 징벌 여부에서도 둘은 차이가 있다. 목표 불이행 시 미달성량의 1.3배 패널티를 부과했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기후협약은 비징벌적·비구속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단지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정치적 압력이 유일한 이행 촉구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구속력을 갖는 징벌 조치가 없다 보니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기로 동의한 당사국들도 먼 미래의 장밋빛 계획안만 줄줄이 제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장기 공약들은 점점 더 거창해지고 비현실적이 됐고, 여기에 ‘ESG 경영’, ‘신재생에너지 사업’, ‘차세대 미래산업’ 등 온갖 수식어가 붙으면서 세계는 이제 환경파괴란 오명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친환경 모임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세계 탄소 배출국 중 상당수가 단지 어려운 정책 결정을 피하기 위한 연막용으로 장기적인 탄소중립 공약을 제시한 것일 뿐이었다.

현재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 2위를 중국과 미국이 차례로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 각각 27.9%, 14.5%였다. 그 뒤를 인도(7.17% ), 러시아(4.6%), 일본(3%)이 뒤따랐고, 우리나라는 전 세계 배출량의 1.67%를 차지하면서 순위로는 9위에 자리했다. 통계에서 나타나듯, 상위 10개 배출국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3를 담당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의 친환경 정책 추진 동향을 살펴보면, 2005년 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한 이래 관련 산업 육성과 확대에 힘쓰는 동시에,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신재생정책 감독 강화 등 다방면에서 노력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UN 총회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고, 올해 7월에는 전력부문을 포괄하는 국가 단일의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실시했다. 또 세계 최대 수준의 재생에너지, 원자력, 수력 발전소를 건설했으며, 전기차 보급 등에도 힘쓰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9월 열린 UN 총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신규 해외 석탄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직까지 기후변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부문을 개혁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정체에 빠졌으며, 국가적인 배출권 거래 시스템은 완화된 제한만을 가하고 있고, 여전히 수십 개의 석탄발전소가 건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코로나19 발생 이전 시기보다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증가세에 있다.

세계 2위의 탄소배출국 미국 역시 제도적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2050 탄소중립’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진전을 이루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배출량은 2007년에 정점을 찍은 이래 계속 감소해 2016년에는 1990년 당시의 5,040tCO2e(이산화탄소 환산톤)보다 약 1.8% 높은 5,131tCO2e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17년부터 시작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동안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고, 이전 오바마 정부가 구상하고 있던 많은 탄소 배출 규제조치를 뒤집거나 중단시켰다. 해당 기간이 미국의 탄소 배출 감축 이행에 있어 '잃어버린 4년'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행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즉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2050 탄소중립’을 기치로 내걸며 2035년까지 발전부문에서의 탄소중립을 중간 목표로 삼았다. 이는 2030년까지 미국 내 발전부문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32%까지 감축한다는 오바마 정부 시절 마련된 '청정전력계획'(CPP)의 정책 목표를 훨씬 상회하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 기후변화 법안을 법제화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상기 언급한 것처럼 기후변화 법안의 제정은 비단 개발도상국에만 부과된 과제가 아니다. 많은 선진국에서도 아직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는 모호한 규정과 처벌로 이어져 일관되지 못한 실행과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전 지구적 문제에 맞서 전 세계 시스템의 변화가 절실하다면 우선 각국의 시스템부터 바꿀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먼 미래의 거창한 목표 설정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법안과 제도 마련이라는 현실적 과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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