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는 경영자들 중에서도 유독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경영자들은 열심히 사업을 하면서도 다방면으로 예술에 관여하고 후원하는 경우가 많다. 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도 바로 이런 경영자다. 어떻게 보면 그의 정체성을 ‘경영자’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문화 예술에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까지 13년째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또 영화제 기간에는 늘 ‘나래코리아 콘서트’를 개최해 많은 영화인들과 영화 애호가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전자제품 제작을 위한 목업(mockup) 사업을 하면서 국내 유수의 대기업은 물론 일본의 기업들과도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영화를 사랑하고 문화와 예술을 동경하는 김생기 대표를 직접 만났다.

 

▲ 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사진=데일리뉴스 DB) 
▲ 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사진=데일리뉴스 DB) 

학원 사업에 이어 목업 사업 진출

김생기 대표의 고향은 ‘동학혁명의 진원지’라고 불리는 전북 부안이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전주로 내려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한 살 때 전주로 오게 됐다. 그 이후로 쭉 전주에 살면서 전북대 법대까지 졸업했다. 이후 전주를 떠났지만, 늘 전주에 대한 애정이 목마르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전주에 가서 밥을 먹거나 지인들을 만나고,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시기에는 아예 상주하다시피 한다. 또한 그는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하다. 젊어서부터 미술품을 모으는데 관심이 매우 많았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처음 하게 된 일은 학원 사업이었다. 당시에는 꽤 잘 나가는 학원이었지만, 무리하게 확장하는 바람에 5년 만에 그만두고, 우연한 기회에 목업 사업을 접하게 된다. 그는 LG전자에 목업제품을 납품하는 한 회사의 제안을 받아 뛰어들게 됐다. ‘일본 회사에서 마그네슘 소재를 알아보고 있는데, 자네가 한번 알아봐 줄 수 있겠는가?’라는 부탁이었다. 김생기 대표는 대학 시절 일본 어학연수를 다녀왔기 때문에 나름 일본어를 할 줄 알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일하게 됐다. 그때가 1999년 말이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수락했지만, 하다 보니 일도 재미있었고 자신이 잘하는 일이라 생각되어서 점점 사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목업제품이란 제품 디자인이 끝난 후 실제 금형으로 물건을 생산해내기까지의 전 단계이다. 플라스틱을 비롯해 다양한 소재로 실제 크기의 제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금형 생산 단계에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전에 시제품을 만들어 보는 개념이다. 그러나 처음 사업을 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목업 업체들의 수준은 매우 낮았다. 설사 일본 기업으로부터 오더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생기 대표는 더욱 열정을 가지고 일에 몰두했고,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2년 이상 일본을 오가며 목업 영업을 했다.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은 지금은 일본으로부터도 품질이 뛰어난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나래코리아가 거래하는 기업은 소니, 파나소닉, 아메리카 제록스 등이지만 1차 벤더는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2차 벤더 쯤 된다고 볼 수 있다. 진입장벽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거래처를 만들고, 최적의 품질을 유지하게 되면 크게 망하는 업종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3D프린터의 등장으로 인해 갈수록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업체들이 줄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김생기 대표는 일본 거래처와 워낙 탄탄한 관계를 형성해놓았기 때문에 펜데믹 사태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고, 지금도 사업을 잘 영위해나가고 있다. 

영화 속 가든파티를 현실에서 …

김 대표는 이렇듯 성실하게 사업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 미술컬렉터 등의 문화 예술을 풍부하게 즐기고 있다. 이는 어렸을 때 아버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막내인 저를 데리고 영화관에 자주 가셨습니다. 그 덕에 그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던 거죠. 당시 피카디리 극장, 삼남 극장 등에 자주 갔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드나들다 보니 그곳 관계자들도 많이 알아 프리패스로 들어가게 될 정도였죠. 당시 영화 속에서 본 가든파티 장면들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영화배우는 되기 힘들겠지만, 영화배우들을 초청해 가든파티를 열고 싶다는 소망이 그때부터 자라났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영화를 품은 후 김생기 대표는 다양한 영화제 집행위원을 거쳤다. 그간에 중국영화제 집행위원, 통일영화제 심사위원을 겸임하면서 ‘영화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경우 영화인이 아닌 사람이 집행위원이 되면 감점 대상이 된다. 

김생기 대표는 어린 시절에 품은 영화에 대한 꿈을 성인이 되면서부터 문화 예술가들을 초대하는 자리로 이어 나갔다. 또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의 ‘나래코리아 콘서트’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는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도 전주가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아주 큽니다. 다른 부분은 하지 못하더라도 전주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만큼은 밀알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콘서트를 시작했고, 전주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많은 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이제까지 김생기 대표가 개최한 공연의 횟수만 해도 총 55회 정도가 되고, ‘나래코리아 콘서트 인 서울’, ‘나래코리아 콘서트 인 후쿠오카’ 등 일본에서도 활발한 공연을 했다.

그는 예술인과 일반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고 한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우리나라의 3대 영화제 중의 하나이고, 독립영화제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그만큼 전 세계 영화산업에서도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전주국제영화제가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4월 27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리는 영화제에는 과거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하나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돔(Dome)이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전주 가장 중심가에 자리잡은 영화 거리에 있는 주차장을 모두 비워서 돔을 설치하고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채로운 분위기에서 영화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준비된 전주국제영화제

이번 연주회도 김생기 대표는 야심차게 준비했다고 한다. 왕주철 지휘자의 ‘유니오케스트라’에서 ‘피가로의 결혼’, ‘미션의 가브리엘 오보에’를 시작으로, 피아니스트 신정혜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리베르탱고’가 이어진다. 그 후 소프라노 김민지의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 ‘강 건너 봄이 오듯’, 무슈고의 ‘첫발자국’, ‘빠담 빠담’, 테너 류정필은 ‘여인의 향기’, ‘민요 메들리’, ‘베사메무초를 준비했다. 또 국내 유명 가수인 김범룡 씨의 출연도 확정됐다. ‘바람 바람 바람’, ‘겨울비는 내리고’, ‘불꽃처럼’, ‘그 순간’ 등을 부르게 된다. 이 정도의 준비라면 봄날의 저녁을 환상적으로 꾸밀 수 있는 훌륭한 선율이 아닐 수 없다. 

김생기 대표는 이러한 문화예술 나눔 활동은 물론이고 그간에 다양한 사회공헌을 해왔다. 30대 후반부터 고향을 위해 500만 원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200만 원, 100만 원을 내기도 했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마음이 우러날 때마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불우이웃들을 위한 연탄 봉사도 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등록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경영’은 합리성과 과학의 영역이고, 문화와 예술은 감성의 영역이라 매우 상극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오로지 합리성만으로 살 수 없고, 또 감성으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영역의 조화는 균형 잡힌 삶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가 더욱 많은 시민들이 문화의 단비를 흠뻑 맞을 수 있도록 지금처럼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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